[칼럼 | 루트아시아] 2017년 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Where is Thailand going?


박번순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 RootAsia

2017년 2월 27일 12:06 오전



2017년 초 45일을 머물렀던 숙소는 방콕의 최고 중심가인 시암스퀘어 부근 태국국립경기장 건너편이다. 지금은 허름하고 작은 국립경기장이지만 1970년 우리나라가 돈이 없어 유치했던 아시안게임을 반납했을 때 태국이 구세주처럼 나서 경기를 대신 치룬 곳이다.

[RootAsia column] 2017년 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Where is Thailand going?

Park Bun-Soon | RootAsia editor 





난생 처음 태국에 왔던 때는 1989년 3월 30일 저녁이었다. 당시 돈무앙 공항을 빠져나올 때 달려들던 더운 바람이 아직도 생생하다.

카오산 근처의 팔러멘트호텔이라는 허름한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식당에서 죽을 먹을 때 풍긴 냄새에 질색을 하고 잘게 썰린 고수풀을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건져냈던 기억도 생각난다. 거리에서 풍겨 나는 시궁창 냄새를 떠올리는 악취, 두리안에서 나오는 괴상한 냄새, 그리고 모든 것이 답답한 이곳 사람들의 일처리…그 이후 태국 경제와 사회를 밀도 있게 관찰하면서 나름 적응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지만 말이다.

2017년 초 45일을 머물렀던 숙소는 방콕의 최고 중심가인 시암스퀘어 부근 태국국립경기장 건너편이다. 지금은 허름하고 작은 국립경기장이지만 1970년 우리나라가 돈이 없어 유치했던 아시안게임을 반납했을 때 태국이 구세주처럼 나서 경기를 대신 치룬 곳이다.

● 1970년엔 태국이 한국보다 우위

이 시기 한국의 1인당 소득이 태국의 1인당 소득보다 몇 달러 많았지만 적어도 국제경기를 치룰 인프라에서는 태국이 우리보다 훨씬 나았던 셈이다. 이 국립경기장은 1978년에도 싱가포르가 반납한 게임을 치러냈다. 그리고 당시 한국과 싱가포르는 아시안 게임조차 치르지 못하고 이들 반납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시점의 소득은 태국의 6~8 배에 이르고 있다.

근래 방콕에는 지난해 10월에 세상을 떠난 푸미폰 국왕의 초상화가 경쟁적으로 서 있다. 수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그림에서부터 노트북 화면 크기의 사진까지 공공건물은 물론이고 개인의 건물까지 고인의 사진들을 걸어 놓는다. 바로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걸어놓는 것과 차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국왕이 죽은 지 이미 수개월이 되었지만 그를 조문하기 위해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은 방콕 그랜드 팰리스를 찾고 있고 그 쪽으로 가는 소위 셔틀버스는 표시를 달고 운행을 한다. 장례식-화장식-이 올해 10월에 열릴 모양인데 그러니까 죽은 지 1년 만에 장사를 지내는 셈이다. 세상의 어느 독재자, 어느 영웅, 어느 국왕의 장례식이 1년 후에 열린 사례가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세월호 리본 같은-색깔은 검은 색이지만-리본을 달고 다니는 교수들, 검은 복장으로 통일한 교수들-그것도 사회과학을 한다는 교수들-그리고 시민들을 볼 때 국외자인 나로서는 이들이 눈치를 보느라 저렇게 다니나 아니면 진심으로 국왕을 추모해서 저렇게 다니나 의문이 들지만 물어볼 수는 없다. 태국 사회에서 국왕에 대한 모독죄로 교도소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들이 국왕을 진정으로 애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다닌다면 태국에는 미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 국왕 장례식 1년 뒤에 치루는 ‘이상한 나라’

지난해 10월 푸미폰 국왕이 서거하자 태국의 모든 언론들은
지면과 방송 등 모든 편집화면을 흑백으로 나타내는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했다.

태국에서 고인이 된 국왕은 모순의 상징이다. 태국의 일반 사람들은 국왕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태국을 어느 정도 관찰하고 이해하는 외국인의 눈에는 그는 태국의 지배계급들이 만들어 놓은 상징조작의 정점에서 그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엘리트계층의 이익을 위해서 철저히 봉사한 사람이다. 이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는 태국사회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나는 감히 주장한다.

고인이 된 푸미폰 왕은 70년을 재위했다. 그러니 지금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태국을 후진시키고 있는 세력들이 태어났을 때 이미 왕이었다. 푸미폰의 권위는 자연발생적이라고 할까. 그러나 태국에서 국왕 특히 푸미폰이 국민들에게 사랑의 대상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그 첫째는 오랜 전통 속에서 태국인들이 왕에 대한 독특한 관념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삭디나(Sakdina)라는 태국식 봉건제 아래서 태국의 국왕은 일종의 반신반인(半神半人)이었다. 힌두문화에 영향을 받은 삭디나는 계급에 따라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문화를 만들었고 여기에 불교가 주는 윤회사상은 태국인들의 순종주의를 더욱 심화시켰다.

태국은 현재 입헌군주국이지만 1932년 혁명으로 절대군주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국민들의 이 ‘삭디나 의식’을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한마디로 의식의 전근대화가 계속되고 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낮은 교육수준 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1/3만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아시아에서도 평균교육연한이 가장 낮은 나라가 바로 태국이다. 더욱이 태국은 방콕과 농촌이라는 분명히 구별되는 이중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교육을 받지 못한 농촌인구들이 전통적인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국왕의 권위의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지속된 군부의 쿠데타와 독재였다. 1932년 이후 국왕은 당시 혁명가들-나중에는 독재자로 변한 군부인사들-에게 별 볼일 없는 존재였다. 1950년대 초까지 당시의 독재자 피분은 국왕을 거의 왕궁에 유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국민들의 독재에 대한 염증을 알게 된 사릿은 피분을 몰아내고 또 다른 독재자가 되어 왕을 풀어놓았다. 이제 왕은 자유롭게 행동하게 되었다. 사릿세력은 국왕을 이용하기로 했다.

● 푸미폰 국왕 체제를 지킨 것은 군부

봉건시대 태국 국왕 앞에서 이뤄진 부복 풍습 모습.
놀랍게도 현대 태국에서도 총리 이하 모든 백성이 국왕 앞에서 이처럼 엎드린다.

19세기말 출라롱콘국왕 때 폐지되었던 국왕 앞에서 엎드리는 부복(俯伏‧prostration)을 다시 도입했다. 이후 태국은 약간의 민주화 과정과 혼란, 다시 쿠데타 그리고 또 짧은 민주화 과정과 혼란 또 다른 쿠데타로 일종의 싸이클을 그리면서 국민들은 국왕에 대하 기대감이 커졌다고 바야 한다.

이때마다 태국 군부는 "국가-종교-국왕-체제를 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들에게 반국가, 반불교, 반국왕을 한다는 것은 곧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푸미폰 국왕은 영리한 그리고 노회한 정치가가 되어 왕실재산- 태국 최대재벌-을 유지하고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군부와 계속 손을 잡았다. 그들에게 진정한 민주화는 와서는 안 되는 ‘불경한’ 것이었다.

셋째로 태국 국민들이 국왕을 좋아하는 이유가 소위 ‘로얄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왕실이 도우고 외지를 방문하여 그 지역을 돕는 프로젝트를 하는 등 많은 사업을 했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함정이 있는 것을 태국인들은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바로 왕실재산 관리처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왕실은 태국 최재 재벌인 SCG 그룹을 갖고 있고 시암커머셜 은행을 갖고 있다. 방콕의 최대지주로서 지금 시암 스퀘어에 자리 잡은 최대 백화점 시암 파라곤도 왕실 땅을 30년간 빌려서 운영하고 있다.

태국 왕실은 자손 만들기의 생산성이 높았다. 몽구트왕-영화 왕과 나의 주인공-은 자식을 80명 이상 두었고 그의 후계자인 출라롱콘 왕도 80명 이상 두었다. 태국의 왕실은 자신들이 써야 할 돈이 많이 필요했고 자지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다시 많은 자식을 두면서 태국의 귀족층은 두터워졌고 필요한 돈은 많아져 갔다. 왕이 국민들을 위해 진정하게 일을 하고자 한다면 세금을 내고 그것을 정부가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즉 왕실은 정부라는 제도를 훼손시켜 왔는데 국민들은 이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 국민적 인기의 태국 왕실, 과연?

이와 같은 구조 속에서 태국은 정치경제적으로 반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쿠데타 이후 아직 헌법이 제정되지 않고 있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헌법을 제정하려는 군부, 거기에 살짝 끼어든 왕실은 이미 지난해 8월 국민투표까지 거친 헌법안을 다시 손질했고 지금 새국왕의 배서-endorsement-를 기다리고 있다. 헌법안이 확정된다고 해도 선거법 등을 제정해 총선을 치르려면 1년 이상 더 기다려야 한다. 국제경쟁 속에 태국은 귀중한 시간을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눈치 빠른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챙기기 여념이 없다. 정치가들은 직접 기업을 경영하고 재벌들의 회장, 명예회장, 자문위원장 등을 하면서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이익을 가져가기 바쁘다. 4년 동안 하루 최저임금 300바트(약 1만 3천 원)는 변하지 않았는데 이는 스타벅스 커피값 두 잔 정도였다. 돈은 돈을 벌어 지난해 말 크레딧스위스 은행의 세계재산보고서에 따르면 태국은 상위 1%가 전체 국가 재산 58%를 갖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러시아와 인도 다음의 극악한 빈부격차다.

군부는 지금 태국 4.0을 광고하고 있다. 제 4차 산업혁명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철을 타기 위해서 가방검사를 하고 20대 여대생들에게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검은 치마를 치렁치렁 입게 하는 국가 그리고 평생 호의호식하고 황금의 집에 살았던 국왕의 장례를 1년이나 걸려 치르는 나라가 어디 희망이 있겠는가.

● 피흘리지 않고 얻은 민주주의의 값비싼 대가

얼마 전 지상철 공사 때문에 방콕에서 가장 교통체증이 심각한 라차요틴 사거리의 신호하나를 바뀌기를 15분 이상이나 버스 안에서 기다리면서-그 4거리 하나 지나는데 30분 이상이 소요-옆의 빈택시 뒤에 써놓은 Long live the King을 보고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빈 택시에 30분을 교통신호를 기다리는 어떻게 보면 태국에서 가장 저소득층에 속할 택시 운전사가 왜 국왕의 만수무강을 빌어야할까? 이만큼의 모순이 어디에 있는가?

태국에 처음 온 이후 태국을 관찰한지 28년 태국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 자업자득이지, 하는 생각도 떨칠 수 없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새 국왕은 고인보다 더 국민들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 군부를 비롯한 기득권층과 그와의 적절한 이익배분이 가능할까?

더 이상 성장은 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삶이 30년 전과 동일한데 국민들이 얼마나 더 참을 수 있을까? 최선의 방법은 순조롭게 공화국으로 이전하는 것인데 이것이 가능할까? 피를 흘려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2017년.2월.27일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