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칼럼 번역 | 데일리 인콰이어러] 독재자 마르코스의 국립묘지 이장에 관한 "배신"


문재승 | 루트아시아 번역팀

2017년 1월 5일 12:53 오전



마르코스 일가가 국가를 자기 재산인양 털어먹고 여러 종류의 폭력을 자행한 것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한 적이 없다. 국민 모두가 ‘영웅들을 위한 묘지’라고 생각하는 국립묘지에 묻히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르코스다. 국민들을 지켜내기 위해 헌법이 그토록 막고자 하는 범법자가 있다면 그는 바로 마르코스다.

[신문칼럼 번역 / 필리핀 데일리 인콰이어러]


우리는 모두는 배신당했다

독재자 마르코스의 국립묘지 이장에 관해



2016.11.9. Philippine Daily Inquirer 사설
원문: http://opinion.inquirer.net/99089/betrayed

독재자 마르코스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이장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요청이 대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 이는 법원의 고귀한 전통과 헌법정신에 대한 배반이다.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사법적인 심판을 소극적으로 해석한 금번의 결정과 관련, 우리는 전문성의 영역에 악의 무리가 침투해 승리한 사례라고 본다.

마르코스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긴 했으므로 국립묘지 안장이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체제를 뒤엎어 독재로 바꾼 인물이다. 마르코스가 군인이긴 했으므로 국립묘지 안장이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군인다움과 용맹스러움에 관한 수많은 조작들이 군생활을 얼룩지게 만들었다. 따라서 마르코스는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이 없다.

마르코스의 가족들은 오늘 (이와 같은 결정을 환영하며) 국가의 화합과 치유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들은 한번도 마르코스 일가가 국가를 자기 재산인양 털어먹고 여러 종류의 폭력을 자행한 것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한 적이 없다. 국민 모두가 ‘영웅들을 위한 묘지’라고 생각하는 국립묘지에 묻히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르코스다. 국민들을 지켜내기 위해 헌법이 그토록 막고자 하는 범법자가 있다면 그는 바로 마르코스다.

아홉 명의 법관들이 도출해 낸 다수의견은 마르코스의 유해가 영웅 묘지에 이장되는 것을 막지 않았다. 마르코스의 악행들, 그리고 필리핀으로 마르코스의 유해를 들여오기 위한 온갖 수작들, 마르코스가 통치기간 중 행한 권력 남용을 처벌한 예전의 20건에 이르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배신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법관들과 법원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사실 아무도 판결문과 이에 딸린 별도 의견들을 읽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법원 대변인은 다수의견 중 다섯가지 사안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주요 이유로 꼽은 사안은 익히 예상했던 것으로, 두테르테 대통령이 국방부에 내린 마르코스 이장 명령이 대통령으로서 행한 중대한 재량권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유감스러운 결정이자 통탄할 만한 실책이다. 다수의 법관들이 자신의 논리속에 역사적인 아이러니가 있음을 간파하지 못했을까.

1987년 헌법은 민주화 이후에 제정된 헌법이다. 헌법은 마르코스의 군사 독재와 같은 악몽을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제정되었다. 따라서 대통령의 계엄권에 대해서 엄격한 조항도 포함되었다.

의회 의원 1/3 이상에 의한 탄핵발의권도 주어졌다. 대법원에 새롭게 주어진 권한도 마찬가지다. “사법권이라 함은 행정부와 제 기관들이 행사하는 권한을 두고 법원이 과도하거나 부족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을 포함한다 2015년 1월 대법원이 헌법의 한 구절을 해석하며 내린 판결문 중 일부를 차용한 것이다”는 판결문처럼 대법원은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권한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예전에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원칙 정치문제의 원칙이란 사법부가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판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운 원칙으로, 특별한 조건이 만족되지 않는 한 법원이 행정부의 소관 결정에 대한 간섭을 금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이 법원의 소극적인 판결 태도를 유도했던 시절도 있었다.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와 관련 부처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법원은 정부의 어떤 조직이라도 그 재량권 행사에 대해 권력 남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권한을 부여받았다. 마르코스 독재와 같은 시기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주어진 권한이었다.

마르코스가 계엄령을 선포한 후, 대법원의 판결들은 주로 독재자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정당화 작업은 변호사이자 자신의 통치를 헌법적 권위주의라고 이해했던 마르코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Javellana vs Executive Secretary 사례에서 보듯이, 법원은 ‘정치적 문제에 대한 원칙’을 통해서만 정치문제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는 금번 판결의 다수의견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물론 그러한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다. 그러나 다수의견을 낸 법관들이 놓친 것이 있다.

어떠한 대통령도 한 나라의 역사를 부정할 수 없으며, 지난 30년의 법체계를 부정할 수 없다는 점 말이다. 그리고 국가적 윤리규율을 뒤집을 만한 권한이 대통령에게 없다는 사실 또한 법관들은 놓치고 말았다. 법관들은 훗날 가차없는 역사적 법정에서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법률가들은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의 한 구절을 즐겨 인용한다. 주인공 토마스 모어는 악마에게도 법의 보호를 인정하는 것을 옹호한다. 이 구절은 문학적으로는 상당한 울림을 주었지만 이론적으로는 문제투성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2016년 11월 8일, 사법부는 법률을 이용해 악마를 보호했다.<끝>


----<각주>---------

1> 2015년 1월 대법원이 헌법의 한 구절을 해석하며 내린 판결문 중 일부를 차용한 것이다.

2> 정치문제의 원칙이란 사법부가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판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운 원칙으로, 특별한 조건이 만족되지 않는 한 법원이 행정부의 소관 결정에 대한 간섭을 금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