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강제퇴거의 시대, 샌프란시스코 필리피노, 그리고 인터내셔널호텔


황 장 석 | 현 Root Asia 객원 편집위원 1) |

2016년 6월 7일 12:14 오후



미국에 건너와 육체노동으로 힘겹게 살아가던 필리핀 노동자들이 대거 모여 살다가, 개발에 따른 강제퇴거에 맞서 10여년 동안 시 정부와 부동산개발회사를 상대로 싸운 인터내셔널호텔(I-Hotel)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은 뉴욕 맨하탄과 더불어 가히 살인적이다. 20평이 조금 안 되는 방 하나 욕실 하나 아파트의 월세가 무려 3800달러일 정도.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회사를 다니는 한 친구는 스튜디오(일종의 원룸)에서 월세 2500 달러를 내고 산다. 딸린 가족이 없으니 그나마 가능한 일일 테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등 잘 나가는 기술기업(tech companies)이 있는 실리콘밸리에 사람과 돈이 몰리면서 해당 지역 집값만 급등한 게 아니었다. 실리콘밸리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도시생활을 즐길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도 ‘스타트업(신생회사)의 거점’이 됐다. 그리고 주거비 등의 물가는 급등했다. 그럼에도 젊은 직원들이 도시 생활을 선호하고, 시 정부가 기업활동과 관련한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데다, 직원을 구하기 쉽다는 이점 때문에 실리콘밸리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큰 범주에서 이젠 샌프란시스코도 실리콘밸리에 포함되는 게 당연한 듯 여겨진다. 이렇다 보니 어지간히 벌지 않고서야 딸린 가족이 없는 젊은 직장인들은 아파트 하나를 2, 3명이 함께 빌려 월세를 분담하며 사는 일도 다반사다. 그런데 사람과 돈이 몰려들면 도시는 부서지고 다시 세워진다. 

낡은 건물은 헐어서 고층빌딩을 올리고, 그러는 사이 거리를 차지한 노숙인들 뒤로 작은 상점과 음식점이 들어서 있던, 냄새 나고 우중충하던 지역이 초현대식 주거 상업지구로 바뀐다. 월세와 상가 임대료 등이 빠르게 상승하고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 원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일어난다. 이는 집 주인이 시세보다 낮은 월세를 내고 살아온 장기 세입자를 내보내는 강제퇴거(eviction)를 동반하는 과정이다. 샌프란시스코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다.

여섯 가족이 사는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50년 동안 살다가 최근 집주인이 바뀌면서 강제퇴거 통보를 받은 87세 기예모 만자나레스 씨. 현지언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보도에 따르면, 그는 오랜 기간 집주인을 대신해 월세를 걷고, 부서지거나 고장 난 물품을 고치며 아파트 매니저로 일해왔다. 

1977년 8월 4일 경찰의 세입자 강제퇴거가 완료된 뒤
시위대와 경찰이 모두 철수한 다음의 인터내셔널호텔 풍경.
3층짜리 벽돌 건물이 인터내셔널빌딩이다
.

하지만 지난해 9월 아파트가 어느 투자회사에게 팔리자마자 매니저에서 해고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비우고 나가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는 최근 몇 년 전부터 몸이 불편해 입주 도우미(간병인)와 함께 기거해왔는데, 그게 문제가 됐다. 당초 혼자 살기로 계약해놓고 거주 인원을 추가했으니 계약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반세기 동안 살아온 아파트가 있는 미션 지구(Mission District)는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샌프란시스코 시가 해마다 발행하는 ‘강제퇴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올해 2월 1년 동안 발생한 강제퇴거 통지는 2120건이었다. 5년 전 같은 기간엔 1269건이었으니, 그 사이 67%나 증가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마닐라타운

강제퇴거가 사회문제화되다 보니 그에 저항해 가난한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주거권 운동도 거세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엔 가난한 세입자의 생존권, 주거권과 관련한 상징적인 건물이 하나 있다. 1920, 30년대를 미국에 건너와 육체노동으로 힘겹게 살아가던 필리핀 노동자들이 대거 모여 살다가, 개발에 따른 강제퇴거에 맞서 10여년 동안 시 정부와 부동산개발회사를 상대로 싸운 인터내셔널호텔(I-Hotel)이다.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에서 미국 민족문제를 강의해온 래리 살로몬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투쟁의 역사, 그리고 미국 주거권 갈등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의 장”이라고 필리핀인(Filipino)이 중심이었던 인터내셔널 호텔 투쟁을 평가한다.

1920, 3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필리핀 사람들이 모여 살게된 곳이 차이나타운 한 켠의 마닐라타운이라 불리는 곳이다.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같은 곳에 있는 코리아타운과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될 듯 하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이후 이듬해 지어진 인터내셔널호텔은 마닐라타운의 중심과 같았다고 한다. 인터내셔널호텔은 육체노동을 하는 가난한 필리핀 남성들이 함께 얘기하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외로움을 달래고 살아가던 공간이었다. 

그들은 특히 외로웠다. 당시 아시안 여성은 대부분의 경우 미국 입국에 제한을 받았다.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는 이민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저 육체노동을 하고, 다시 수요가 사라지면 돌아가는 값싼 남성 노동력이 필요했다. 1965년 남편이 아내와 자녀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경우 외국인의 입국이 용이하도록 이민법이 개정됐다. 그제서 야 비로소 아시안 여성의 미국 입국 제한이 사라지게 됐다. 필리핀 등에서 온 아시안 남성 노동자들은 미국에서 다른 인종의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리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1967년에야 서로 다른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이 미국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으니 하는 말이다.

필리핀계 미국인 이민사는 대체로 세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필리핀이 미국 식민지가 된 1898년부터 1924년‘10년 후 필리핀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타이딩스-맥더피법(Tydings-McduffieAct)이 미국의회에서 통과된 시점까지. 이 때는 학생과 노동자 중심으로 이민이 이뤄졌다. 두 번째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시기엔 참전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시민권을 얻은 참전 군인들의 이민이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가 1965년 미국이 그때까지 강력하게 통제해온 이민 쿼터를 느슨하게 푸는 내용으로 이민법을 개정하고 나서 20여년 동안. 이 때엔 교육 수준이 높은 전문직 화이트칼라 중심으로 이민이 이뤄졌다.

1977년 8월 4일 새벽, 샌프란시스코 인터내셔널호텔
앞에서 법원의 세입자 강제퇴거 명령을 집행하려는
경찰과 그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

1977년의 치열한 전투

마닐라타운헤리티지재단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마닐라타운에 살고 있던 필리핀 남성 인구는 1920~35년 9,328명이나 됐다고 한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이후 샌프란시스코 시가 파이낸셜 지구(Financial District) 주변 개발에 나서면서 마닐라타운에 있던 저렴한 숙소와 작은 상점, 음식점 등은 사라져 갔고 샌프란시스코의 필리핀 공동체도 점차 약화돼 가고 있었다. 1968년 11월 27일 150명의 나이 많은 필리핀 세입자와 일부 중국계 세입자 등이 강제퇴거 반대 투쟁에 나섰을 때, 마닐라타운에 남아있는 건물이라곤 인터내셔널호텔 뿐이었다.

1960년 후반까지 한달 50달러만 내면 살 수 있었던 3층짜리호텔의 가난한 세입자의 투쟁이 샌프란시스코 마닐라타운의 마지막 저항이었던 셈이다. 부동산재벌로 유명한 월터 쇼렌스타인(1915-2010)이 인터내셔널호텔을 사들인 건 1968년 3월이었다. 당시 쇼렌스타인의 부동산투자개발회사는 3층짜리 호텔 벽돌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고층 주차장을 세울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 해 9월 시 당국에서 건물 철거 허가를 받은 쇼렌스타인은 곧바로 다음달 세입자들에게 다음해 1월 1일까지 호텔에서 나가라고 통보했다. 그는 1977년 12월 뉴요커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인터내셔널호텔 철거에 대해 “나는 슬럼가(slum)를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제퇴거 통보에 대해 세입자들은 필리피노연합회(UFA,United Filipino Association)을 결성하며 맞섰다. 여기에 UC 버클리와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아시아계 학생들이 중심이 된 대학생들이 결합했고, 지역 활동가들이 뭉치면서 강력한 저항이 시작됐다. 반발이 커지고 지역사회의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쇼렌스타인의 회사와 UFA 간 호텔 임대계약이 체결되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1969년 3월 호텔에 석연치 않은 화재가 발생해 세입자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났다. 쇼렌스타인은 건물 붕괴 위험을 내세워 계약을 백지화했지만, 결국 비판적인 여론이 정치권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지면서 같은 해 6월 임대를 3년 연장하는 계약에 서명했다. 임대 계약이 끝난 뒤에도 호텔 철거가 여의치 않자 쇼렌스타인은 1973년 10월 호텔 소유권을 외국계 자본에 팔았다. 호텔을 산 외국계 자본은 미국 국내 정치권과 여론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법정 다툼이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의 강제퇴거 집행 명령으로 이어지면서 1977년 8월 4일 새벽 3시 충돌이 발생했다. 강제퇴거에 반대하는 세입자와 대학생, 운동가 등 3000여 명이 인간방패를 결성하고 있는 가운데 400명의 폭동진압 경찰이 진압봉을 휘두르며 이들을 끌어냈다. 그리고 다음해 가을 인터내셔널호텔은 완전히 철거됐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UFA를 중심으로 쫓겨난 세입자 대책과 세입자를 배려한 개발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르면서 철거 이후 당시 샌프란시스코 시장이었던 다이앤 페인스타인(현 연방 상원의원)은 인터내셔널호텔 부지 개발과 관련한 시민자문위원회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82년엔 이 시민자문위원회의 요구로 시의회가 인터내셔널호텔 부지 개발과 관련한 조례를 제정했다. 해당 부지를 개발하려면 자문위원회와 시 등과 협의해야 한다는 게 뼈대였다. 

이후 시 정부와 땅 주인, 개발업자 등과의 기나긴 협의가 시작됐다. 그리고 1998년 가톨릭 샌프란시스코 대교구에서 호텔 부지를 사들이고, 시 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해당 부지에 가톨릭학교 및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주거시설인 새로운 인터내셔널호텔(International Hotel Senior Housing)을 짓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02년 첫 삽을 떠서 2005년 8월 26일 문을 연 새 인터내셔널호텔은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104개의 임대용 주거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인터내셔널호텔 철거 이후 결성된 마닐라타운헤리티지재단은 과거 호텔에 살았던 세입자들을 찾아 그들이 새 인터내셔널호텔에 입주할 수 있도록 도왔다.

2015년 8월 4일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있는
인터내셔널호텔. 호텔 외벽에 필리핀계 이민자들의 고달픈
삶을 표현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남겨진 105명의 노인들

2010년 미국 인구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미국령 푸에르토 리코 포함) 필리핀인 인구는 341만6840명으로 그 가운데 가장 많은 43.2%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Bay Area)에는 40만명 가량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필리핀 커뮤니티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강제퇴거 반대운동의 한 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닐라타운헤리티지재단을 이끌고 있는 시인이자 작가인 토니 로블스처럼. 그는 인터내셔널호텔 강제퇴거 반대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하나인 앨 로블스의 조카다.

지난 8월 4일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커니가(Kearny St)868번지. 커니가와 잭슨가(Jackson St)가 교차하는 모퉁이에 있는 15층 건물, 인터내셔널호텔을 찾았다. 건물 외벽과 1층 로비에 붙어있는 각종 안내문은 영어와 필리핀어, 중국어 세 가지로 적혀 있었다. 로비에서 근무하는 중국계 여성에게 물어보니 104개의 공간에 105명 가량이 살고 있다고 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의 공간이란 얘기였다. 로비에는 철거된 인터내셔널호텔 로비에 있었던 금속 현판이 걸려 있었다.

건물을 나와 길을 건너 다시 한번 건물을 쳐다봤다. 가로수 잎에 가려 현관에 걸린 I-Hotel 이란 간판은 잘 보이지 않고 건물 외벽에 그려진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낯선 타국 땅에서 고향이 그리워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던 필리핀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벽화의 오른쪽 하단엔 ‘강제퇴거 중단(Stop the eviction)’이란 문구가 쓰여 있었다.

(2015년 11월)


각주

    1) 전 동아일보 서울신문 기자 스탠포드대 방문연구원(2013년 1월
    ~2014년 7월) 서강대 정외과 졸, 동 대학원 석사(인도네시아 정치 전공)
    
    ① 강제퇴거 충돌직전1
    1977년 8월 4일 새벽, 샌프란시스코 인터내셔널호텔
    앞에서 법원의 세입자 강제퇴거 명령을 집행하려는
    경찰과 그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
    
    ② 인터내셔널호텔 내부 연혁표기
    사진설명: 현재 저소득 노년층의 주거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는 인터내셔널호텔 1층 로비에 호텔의 역사를 정리한
    액자가 걸려있다.
    
    ③ 인터내셔널호텔 내부 오리지널로비_현판
    사진설명: 인터내셔널호텔 로비에 걸려있는 금속 현판.
    이 현판은 1977년 철거된 인터내셔널호텔 로비에 있던
    원본이다.
    
    ④ 강제퇴거 종료이후
    1977년 8월 4일 경찰의 세입자 강제퇴거가 완료된 뒤
    시위대와 경찰이 모두 철수한 다음의 인터내셔널호텔 풍경.
    3층짜리 벽돌 건물이 인터내셔널빌딩이다.
    
    ⑤ 인터내셔널호텔
    2015년 8월 4일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있는
    인터내셔널호텔. 호텔 외벽에 필리핀계 이민자들의 고달픈
    삶을 표현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